하카타역 타치노미 미키야주점, 서서 마시는 立ち飲み 이자카야
- 일본/술 마시는 곳
- 2016. 4. 7. 11:42
잊을수가 없다.
군에 입대하고 배치받은 부대에 행사가 있어서, 소주를 엄청 마시고 나서 정신줄을 놓은 적이 있었다.
갓 자대 배치 받은 이병이 술 취해서 '헤헤헤' 하고 있으니 '이 xx가 미쳤나...'하는 사람도 있을 법 한데,
어찌나 다들 친절했는지 서서 이것저것 집어먹고 있는 나를 보며 '체한다. 앉아서 편하게 먹어도 되니까 앉아서 먹어라.'라고 해 주었던 사람들.
그래, 우리나라는 서서 먹으면 체하니까 앉아서 먹어야 한다, 라는 문화다.
근데 일본은 서서 먹는 立ち食い(타치구이) 가게가 여기저기 존재한다. 위키피디아에는 에도시대부터 이런 문화가 있었다고 하는데 아, 그렇구나.
지하철 역에 있는 작은 소바집, 사거리의 구석에 붙어있는 작은 스시집, 그리고 번화가 혹은 오피스가 근처의 이자카야 등등...
그리고 기차 승강장에 소바집이 있는 경우도 꽤 있다. 처음 봤을 때는 어찌나 신기하던지.
기차 기다리면서 살짝 들러서 한 잔 혹은 한 그릇 마시고 기차 탄다는 느낌.
예능방송에도 간혹 나오더라. 기차가 정차했을 때 내려서 소바 먹고 오기. 소바를 거의 마시듯이 먹고 오더라.
그런 '잠깐 들러볼까?' 하는 느낌의 立ち飲み屋가 우리 회사 뒷쪽에도 있어서, 한 번 들러보았다.
가게 이름은, 三喜屋酒店(미키야 주점).
오전과 오후에는 술을 판매하는 가게로, 저녁 5시 부터는 立ち飲み, 타치노미로 바뀌는 가게이다.
처음에는 독특하다고 생각했는데, 술을 판매하는 가게들의 대부분이 이런 시스템이더라.
7시 30분 정도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와 정말 손님으로 가게가 북적북적 하더라. 이 열기. 이 賑やかさ(활기참).
여성 분들은 들어가기 힘들겠다고 지나가면서 느꼈었는데, 의외로 여성분들도 꽤 들어와 계시더라. 대신 젊은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손님들이 샐러리맨으로 양복 차림이다. 사복은 나랑 할아버지 몇 분 정도.
허리 조금 위에까지 오는 테이블의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가게를 둘러보니, 酒屋라는 이름에 걸맞게 꽤 많은 종류의 술을 판매하고 있다.
이 술을 병 째로 사서 마시다가, 보관하고 다음에 와서 또 마시고 그러기도 한다.
이렇게
이름 뿐 아니라, 이런저런 스트랩이 달려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보틀을 보관할 때 가지고 있던 스트랩을 붙여 둔다고 한다.
다음에 찾기 쉽도록.
내 옆에 있던 손님들은 손에 차고 있던 팔찌를 병에 걸어 놓고 보관해 달라고 하더라.
아- 안동 소주인데, 미키마우스 스트랩을 저번에 붙여뒀어요.
아, 그거그거. 잠시만 기다려.
가게는 이런 느낌이다.
주방 위에 'ちょっと いっぱい'라고 적힌 노렌이 걸려있는데 번역하면 '살짝 한 잔'
딱 타치노미야에 적절한 문구다.
단골 손님들이 들어오시면 할아버지가, '오, 오늘도 한 잔 하려고?' 하고 보관해 두었던 소주를 꺼내 따라주신다.
몇 년은 다녔던 분이겠지.
주문을 따로 받지도 않고, 메뉴도 없다.
우리가 가서 메뉴 주세요, 했더니 '처음?'이라고 물어보시더라.
냉장고에서 맥주와 컵소주를 꺼내서 마시면 되고, 마른 안주는 매대에서 자기가 먹고 싶은걸 가져오고.
생선 같은 건 테이블 위에 재료가 준비되어 있으니 말해주면 구워준다고 한다.
특이한 시스템이구만.
사진에 보이는 랩에 덮여있는 재료들이 구이 안주.
생선 종류가 많고, 소시지 처럼 그냥 굽기만 하면 되는 재료들이 대부분이다.
냉장고에서 꺼내온 삿포로 黒ラベル와, 안주 몇 개, 그리고 구워 달라고 한 가오리 지느러미.
나는 지느러미라고 해서 어, 안먹을래요 했는데, 먹어보니 의외로 맛있다.
오징어랑 비슷한 식감인데, 오징어보다 오히려 나을지도.
막 꺼내와서 먹으면 되는 점은 굉장히 편한데, 가격이 얼만지도 모르고 계산이 틀려도 알아차리기 힘들다.
근데 뭐, 다른 이자카야들이랑 비교하면 무조건 싸기는 하다.
카마보코
엄청 쫄깃쫄깃 맛있더라.
이때 쯤 가게가 좀 비기 시작해서, 주인 아저씨랑 얘기를 좀 했는데 여기서 장사를 시작하신지 50년 째라고 한다.
지금은 주변이 빌딩이나 호텔로 가득하지만, 처음 하카타역 앞에 자리를 잡았을때는 주변에 논・밭밖에 없었다고 한다.
아 그때 땅을 사뒀으면.
이제 근처에 목조주택은 자기 가게 밖에 없다며 보라고 천장을 가리키시는데, 오 정말 나무다.
역사가 살아 숨쉰다.
2잔 째부터는 메실주로.
나는 달지 않은 메실주를 좋아하는데, 이건 꽤 달더라. 그래도 맛있게 마셨다.
술을 냉장고에서 꺼내오면 아저씨나 아주머니가 와서 빈 캔을 치워주시면서 가져온 술을 확인하는데,
아저씨가 보시더니 자기도 이거 좋아한다며 '맛있지?' 그러시고는 가신다.
네, 맛나요.
오징어? 한치?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만큼 이것저것 안주가 많은 테이블이 없다.
다들 어디서 이미 먹고 마시고 나서, 2차로 온 것 같더라 혹은 퇴근하면서 정말 잠깐 들러서 한 잔 후딱 마시고 나가는 분들.
우리는 저녁도 안 먹고 1차로 왔으니... 배가 고파서 이것저것 많이 주워먹었다.
연륜이 느껴지는 가게 내부, 나보다 나이가 많은 가게다. 사진들도 색이 많이 바랬다.
둘이 계산하니 3,500엔
안주를 많이 집어먹었더니 꽤 가격이 많이 나왔는데, 옆자리에서 마시던 분들은 4명이서 마셨는데 2,500엔인가 나왔더라.
타치노미는 역시 배를 채우거나 술을 많이 마시는 곳은 아니구나.
하지만 굉장히 기분 좋게 웃으면서 많이 마셨다. 행복하구나.
다음에는 라멘집에서 배를 조금 채우고 오는 게 좋겠다고 얘기를 하면서 각자 집으로 해산.
三喜屋酒店
영업시간
17:30 ~ 21:00
주말 및 공휴일은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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